3-6. 이터널 선샤인 연애

영화는, 마치 연애와 같이, 끌리는 시간이 있고, 날이있다.

이터널 선샤인은, 스물 한살때의 전 남자친구와 함께 보다가, 나는 바로 잠이 들어서 잘 기억이 안나는 영화였는데
전 남자친구는 나에게, 별로 내용은 볼 필요 없고, 그냥, 실패할 것을 알아도, 그래도 사랑해볼 가치가 있다, 이런 메세지만 알면 된다고, 그렇게 말했던 느낌만 어렴풋이 남아있다.

전 남자친구는 내가 사랑받기 위해서 사람들과 쉽게 잔다고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하지만 이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이 얼마나 서럽냐면
나는 항상 사랑 받기보다 사랑 하고 싶었고, 원껏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보다 내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게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았고,
육체적인 관계에 있어 그것에 대한 죄의식 없음과 죄의식이 있어야하는데도 없다는 것에 대한 죄의식 사이에서의 갈등하는 것을,
나를 사랑함과 남을 사랑함이 같다는것을 모르는 철없는 이십대의 나는 나를 혐오했음을, 나에 대한 혐오를 사랑함으로 해서 나를 사랑하려했음을,
이를 포함한 많은 요소들을 더해서 더해서 결국 한다는 말이 사랑받기 위해서 사람들과 쉽게 잔다, 라면
그 단어들의 조합을 부정할 수 없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지만, 아니 그렇기에 더 억울한것을.

보는 내내 전 남자친구가 계속 생각났다. 다시 만나고 싶다거나, 미련이 남은건 전혀 아니다.
그가 너무 혐오스럽고, 내 자신이 부서지지 않고 더 강해져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영화속의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에, 전 남자친구와 나를 대입해 감정이입했던 어리석었지만, 어리석었기에 용감했던 스무살의 내가 계속 생각났다. 뭐라해도, 내가 전 남자친구를 사랑했음을 부정할 수 있을까. 스물 한 살 화창한 어느날의 나.

이제 많은 시간이 흘렀고, 
나는 다른 사람이지만. 아니, 같은 사람이지만 또 다른 사람이지만
또 다른 사람과 마음껏 사랑해 보지도 못했지만
어쩌면 그 다른 사람들과 나는 이미 사랑했던 사이인지도.
이미 사랑했던 사이. 그 단어들의 조합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지만 억울한것을.

자꾸, 
몇달이 흐른 후 내가 전화를 걸었을 때,

떨리는 목소리로 내 전화를 받는 R의 모습과
내 전화를 못받는 R의 모습과
내 전화를 못받아서 고민하는 모습과
못받아서 다시 거는 모습과
못받아도 신경쓰지 않는 모습과
내 전화를 받지 않는 모습과
내 전화를 받지 않고 후회하는 모습과
내 전화를 받지 않고 잊는 모습과
나를 사랑하는 그의 모습과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의 모습과
내가 사랑하는 그의 모습과 그의 모습이 아닌 것들이

내 마음속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한 몇년 후엔 잊을, 이사람에 대한 그런 기분.
만약 이 글을 저 먼 미래에 다시 읽는다면, 그땐 어쩌면 전화를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


덧글

  • 2018/03/28 21:58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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