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큰 깨달음이 있었다. 적어도 내가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쁜남자는 그 남자가 나를 좋아하는지 안좋아하는지 그 남자의 마음이 뭔지를 파악하느라 그 사람의 단점을 볼 겨를이 없어서 마냥 좋은 것이다. 좋은 남자는 그 애매함 자체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나를 너무 투명하고 정직하게 좋아해 주면, 갑자기 그 사람의 단점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장단점이 있게 마련인데. 아마 Q의 단점들은 내가 그를 오래 만났다면 나를 미치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거의 매일 꿈에 나오는 Q가 너무 보고 싶고 그럴 때가 있어서 R에게 미안해진다. 나는 R을 통해 Q가 채우지 못한 어떤 빈자리를 채우고 싶어 하는 걸까.
(2)
잠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너를 원하지 않게 돼. 난 널 원하지 않고 싶지 않아. '너'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거야 그냥 내 마음이 그래.
너를 생각할 때 마다 약간 마음이 짠해져. 너를 배신하는 것 같아. 아니, 다른사람을 만나진 않았어. 음. 말하자면 너랑 나 사이의 관계는 이루어질 수 없는 확률이 높은데, 그 때문인지 자꾸 너를 생각할 때 너의 결점을 찾게 돼. 이 관계가 필연적으로 깨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무의식적으로 미리 생각해 놓고 싶은가봐. 우리가 헤어질 때 내가 좀 덜 다치기 위해서.
너도 알다시피 나는 과거의 짐이 많아. "짐 많은 애"라서, 우리 둘이랑은 관계 없는 일들이 우리 둘 사이에 영향을 끼쳐서 미안해.
(3)
이런 얘기들을 하는 나에게, R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고, 이 한마디로 내가 보는 그의 모든 단점들은 일단 눈감아줄 만 하다고 생각했다.
잘 들어, 나에게 넌 절대"짐 많은 애"가 아니야.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넌 나에게 "포도젤리"야.
연애 전선 이상 없다. 일단은.
아, 맞다, 재미있는 것 알려드릴까. Q과 R은 이틀 간격으로 태어난 전갈자리. 둘다 나랑은 거의 딱 1년 연하. 태어나서 같은 전갈자리랑 연애한건 Q와 R이 처음인데, 별자리 같은거 믿지 않아서 아마 우연이라 생각되지만, 확실히 잘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덧글
2018/02/08 2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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