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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마무리. 그리고 3-1. R과 2018년의 새로운 시작 연애

2-17

Q와의 연애는 꽤 애틋하게 끝났다. 그는 암스테르담으로 이사를 갔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 온 후 보고싶은 마음에 오픈 롱 디스턴스 릴레이션십을 내가 제안했으나, 그는 내가 좋기에 나와 연락을 끊고 싶진 않지만 장거리 연애는 하고 싶지 않다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펜팔이다 (ㅋㅋ)

Q와의 연애에서 배운게 있다면, 착한 사람과 연애 하는 것의 즐거움. 잘생긴 남자와 예쁜 옷을 입고 연애하는 것의 즐거움. 신급 섹스 스킬이나 하늘이 점지해준 속궁합 같은게 없어도 서로를 좋아하고 그 감정을 나누면서 하는 섹스의 즐거움. 내가 100% 원해서 하는 연애와 섹스와 서로 좋아하는 마음의 즐거움.


3-1. 




2018년을 맞이하여 길었던 휴식기를 박차고 다시 내 연애에 대해 기록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들어와서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 중 틴더 골드의 사용 후기를 읽어보고 있었다. 어떤 칼럼에서는 틴더 골드가 톰 하디가 나를 먹는 중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보다 큰 ego boost라고 표현했고, 나는 그 캐치프레이즈에 현혹되어 당장 약 2만원 정도의 거금을 내고 틴더 골드 한달치를 내 자신에게 선물했다. (아이스크림이 먹고싶어졌다 집에 가는 길에 사가야겠다.)

내게 있어 틴더 골드의 장점은 두가지가 있었다. 틴더 패스포트와 나를 좋아한 사람 보기. 틴더 패스포트는 내 위치를 지구 어디에라도 설정 할 수 있고 (평양도 가능하다. 단 평양에서는 나와 같이 평양으로 패스포트 한 사람들만 보이는 것 같다), 나를 좋아한 사람 보기는 뭐, 말 그대로다.

3월에 파리에 갈 예정이라 파리로 내 위치를 재설정 하고 잠깐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약 2000명의 남자가 나에게 좋아요를 날렸고 (모든 남자는 일단 오른쪽으로 스와이프 하고 본다는 틴더의 게임 띠어리라던가, 옐로우 피버, 그 남자들의 매력과 같은 문제들은 차치하고), 솔직히 얘기하자면 정말 Q의 거절 이후 약간 흔들리고 있던 자신감 강화에 큰 도움이 됐다. 어찌 됐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 사진과 프로필이 매력적이라 생각한다, 는 사실이 좀 놀라웠고, 안도감을 줬다.

왜냐하면 Q와의 연애가 끝나고 나서, 내가 좀더 예쁘고 날씬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나를 야금 야금 갉아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누가 봐도 예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면, 내가 날씬하고 쭉쭉빵빵했다면, Q가 그렇게 쉽게 나를 거절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해서든 장거리 연애를 한번쯤 해보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한국에 돌아와서 길거리의 날씬하고 잘 꾸민 여성들을 보고 있자니 내 외모적인 부족함에 일단 움츠러들었고 (내 남자 친구의 틴더를 통해 보니 한국 틴더의 여성분들도 너무 예뻤다) 게다가 내 성격적인 매력이나 결함들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었었다. 

그러던 중, 키 큰 금발에 날카로운 눈빛과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힙스터 게임 디자이너 R이 나에게 수퍼 라이크를 날렸고, 그와 대화를 한지 이제 약 2주. 거의 매일 문자를 하고 시간이 있으면 전화를 하는데, 어제 전화를 하다가 갑자기 R이 내게 말하길,

"저번에 내가 너 외에 또 이렇게 연락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 그랬었잖아." (내가 며칠 전에 물어봤었다)

"응" (아 올게 온건가 ㅋㅋ 싶어서 좀 겁먹었었다)

"너랑 매치 되기 전에 매치 된 사람인데, 뭐 그사람 좋은 사람인거 같아서 일부러 욕하고 싶진 않지만, 솔직히 얘기해서 너랑 얘기하면서 그사람에 대해 관심이 식었어. 아마 한번쯤은 만나게 될 거 같긴한데, 아마 아무 일 없을거야."

"아, 그래 말해줘서 고마워. 너는 그 사람이나 또 다른 사람이랑 만나게 되면 얘기해줘. 난 아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서."

"알겠어. 다른사람 만날거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만나게 된다면 그렇게 할게. 넌 혹시 다른 사람 만나게 되면 있잖아, 나한테 얘기하지 말아줄래?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나도 뭐 딱히 생각 없긴 한데 알았어 얘기 안할게. 근데 확실해?"

"음...내가 너가 다른 사람 만난다는걸 알아서 뭐가 좋은데?"

"나같은 경우에는 네가 나한테 얘기 해야한다, 는 룰을 세우는 것 만으로도 너가 다른 사람 만날 때 한번쯤은 더 생각하게 된다고 생각해. 나한테 얘기해야 된다는 것 만으로도 안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잖아. 후자의 경우에는 지금 내가 파리에 없으니까 굳이 막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내게 말해야 된다는 것 만으로도 안만나게 되는 사람이면 적어도 우리가 3월에 볼 때 까지는 안만났으면 해서."

"듣고 보니 그렇네."

내가 R에게 얘기를 하기로 했는지 안하기도 했는지, 이야기의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도 아마 3월 전에 다른 남자를 만날 것 같진 않으니 상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R이 한 얘기중에 약간 멈칫, 하게 된 얘기가 있는데 그 다른 여자 얘기를 하다가

"너랑 걔 사이에서 네가 이긴거야"

라고 했었다. 뭔가 이질감이 드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정확이 왜 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생판 모르는 여자랑 R을 놓고 겨루다가 이기고 지고, 같은 식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있다. 왠지 지금은 아무 문제 없는데 시간이 흐른 뒤 이걸 떠올리면서 "아 그때 걔 이런말도 했었지 역시" 라고 말하게 될 것 같은 말이라 기록해 놓는다.

어쨌거나 이어서 우리는 만약 서로 너무 좋아하게 된다면 어떻게할까, 를 고민하다가, 일단 닥치면 생각해보자고 마무리했다.

아무튼 새해는 아직 실제로 만나지도 못한 시버러버인 R의 단도직입적인 고백으로 시작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을 Q와 경험 했다면, 나를 좋아한다고 이렇게 분명하게 말하는 사람에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을 R과 경험하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고백을 받는 순간 마음이 식어서 도망갔을 텐데. 게다가 Q가 나에게 그의 마음을 R처럼 이렇게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음에도 그를 이해하려고 했던 나 자신을 약간은, 아주 약간은 후회하게 되었다. 무엇이 변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가 나를 좋아하는게 아닌, 나를 좋아하는 남자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됐고, 사실 기분 좋다. 고백받았다고 자랑하는거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연애를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집중하다가 문득 되돌아보니, 내 연애 인생은 점차,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덧글

  • 2018/01/08 22:5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1/08 23:1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1/15 18:0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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