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마법이 풀리는 시간. 연애



"너한테 얘기하지 않은 것 같은데, 반년 내외로 이 주를 떠나고 싶어. 이제야 얘기해서 미안해. 그리고 넌 여기 있으려고 하고. 그래서 확실한 대답을 못하겠어. 정말 미안해."

"현실적인 것들은 나도 이해해."

"어릴 때 부터 내 꿈이었거든.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 내게 딱 하나의 기회가 있었는데 열 여덟살 때 날려버렸지. 여기로 이사오게 된건 내 가치관과 너무 다른 것들 때문에 온거였어--순전히 돈이랑 커리어 말이야. 난 40살이 되어서 내 삶을 되돌아보며 정말 날려버렸다고 생각하고 싶지가 않아...

게다가 사실 성인이 된 이후로 제대로 된, 진지한 연애를 해 본적이 없어.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모든 건강하고 좋은 연애는 유통기한이 있는 연애였어. 그래서내 스스로 뭔가 문제가 있는거 같다고는 생각하는데, 그건 내가 차차 풀어나가야 하겠지... 

그리고 사실 네 문자를 일부러 씹은것도 없지 않아. 난 앞으로 항상 네 곁에 있어 줄 수 없을 텐데 그런척 하는것도 나쁜짓 같아서 말이야."


한참의 정적.


"음... 결론은 말이야, 넌, 분명, 내가 아쉬워하게 될 좋은 기회라는거야. 내가 굳이 이 얘길 꺼낸건, 우리 관계를 더 발전시키자, 는 뜻보다는, 다른 현실적인 부분들은 차치하고 순수하게 나에 대한 너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어."

"응. 너 좋아해."

Q는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속으로 그러면 됐다, 싶었다. 우리는 차안에서 담배를 두 대 폈고, 집에가서 코럴라인을 봤다.

우리는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고 내가 지하철을 타야하는 시간까지 소파에서 노닥거렸다. 약간 취기가 올라 상기된 얼굴로 내게 키스를 하는 그의 몸의 무게를 느끼자니 갑자기 시큰해 지는 코를 참을 수가 없어서 난 그를 밀어냈고, 계속 화장실로 가서 코를 푸는 나에게 속도 없이 그는 저녁이 너무 매웠거나 감기 기운이 있냐고 물어봤다. 

금방이라도 울음보가 터져 버릴 것 같아 대답을 피하고 그의 눈을 피하고 정리하는 것을 도와줬다. 내가 조금 이상한 걸 눈치는 챈 듯 했다. 갑자기 저녁이니 춥지 않겠냐며 Q는 스웨터를 빌려줬다.

"이거 내가 17살때부터 갖고 있던 스웨터인데, 내가 제일 아끼는거야. 그러니까 잠수 타면 절대 안돼. 꼭 돌려줘야돼."

"필요하면 소포로라도 부칠게. 너무 걱정하지마."

마음에도 없는 모난 말. 예정 시간보다 6분 일찍 함께 집을 나섰다. 담배를 한대 피우며 역까지 걸어갔다. 그의 셔츠에 그려진 애꿎은 곰돌이의 코가 하트 모양임을 깨닫고 손으로 가리켰지만 하트라는 단어를 차마 내 입으로 말하지 못하겠어서 그냥 곰돌이의 얼굴을 이제야 자세히 보네, 하고 또 아무말이나 지어냈다. 

키스를 했다. 세번 셀 때까지. 

마법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지하철 개찰구로 급히 향했다. 

Thank you, thank you so much, for everything.


덧글

  • 2017/09/11 17:4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9/18 16:3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7/09/12 01:1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9/18 16:3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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