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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d Time's the Cha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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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달다.
연애
by
포도젤리
2017/07/22 09:31
podojelly.egloos.com/9941446
덧글수 :
2
낮잠을 자다가 Q에게서 문자가 왔길래, 공부하는거 힘들다고 징징댔더니
쉿, 괜찮아, 걱정마. 내가 쿠키 구워다줄게.
어...?
2n년 살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라 약간 당황했다. (다행히도) 호의를 받은게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에게 이런 호의를 보여준 것은 처음이다. 애써 발버둥 치치 않아도 되는게 인연이라고, Q는 내가 애타게 하지도 않고, 뭔가 안맞아서 괴롭게 하지도 않고, 그의 호의가 부담스럽지도, 과하게 기쁘지도 않은데 뭔가 편안하고 잔잔한. 그리고 달콤한.
나는 이때까지 내가 나쁜 사람만 좋아하고, 착한 사람에게는 끌리지 못하는줄 알았다. 왜냐하면 내가 이때까지 좋아했던 사람들은 나에게 다 나빴고, 나에게 잘해줬던 사람들은 다 끌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게 낮은 자존감의 증상이라는 걸 여기저기서 주워 듣고, 괜히 억울하면서도 또 더욱 자존감이 낮아질 뿐이었다. (나는 왜이렇게 자존감이 낮지, 하면서.) 그런데 논리적인 인과관계의 오류가 있다. 나빴기에 내가 좋아했던게 아니고, 잘해줬기에 끌림이 없었던게 아니다. 그냥 끌렸던 사람들은 내게 제멋대로 굴어도 내가 붙어있을 만큼 끌림이 강하게 들었던 사람들이었고, 안끌렸던 사람들은 내게 붙어서 그렇게 잘해줘도 내가 끌림이 없었던 것 뿐. 일방적인 끌림만 있어서는 결국 "나쁜남자"에게 "당하게" 되어있다. 그들은 일부러 나한테 나쁘려고 한게 아니고,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사람만큼 나를 대한건데, 나도 사람이니만큼 간절한 피해의식이 생기기에. 게다가 사람은 심리적으로 갖지 못하는게 더 좋아보이기도 하지 않는가. 그리고 착함만으로는 끌림을 만들어낼 수 없다. 더군다나 가끔 운이 안좋으면 어떤 남자들은 "내가 이렇게까지 잘해줬는데 내게 안주는 XX"같은 못된 생각을 하고--영어로는 "nice guy syndrome"이라고 한다--자기가 여자에게 잘해줬다고 해서 여자가 그를 좋아해야 한다는 요상한 보상심리를 갖고 있을 때도 있다.
끌리는 남자가 나에게 잘해준건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라 뭐 어찌할바를 모르겠다. 몸둘바를 모르겠다는 말을 체감하고 있다. 그래서
쿨하고 큐트하고 시크하게 답장을 못하는 나:
?!?!? 왜? 무슨일로?
쿠키를 구워준다는데 무슨일로 라니. 사실 주는 사람 입장에서 엄청 김빠졌을거 같아서 미안하다. Q는 레시피중에 만들고 싶었던 게 있었고, 자기가 좋아하는 바리스타가 생일이라 갖다 주고 싶어서 만드는 김에 내꺼도 만드는 거라고 했다. 나는 세상엔 너같은 사람이 더 많아야해! 라고 답장했다.
다음날 그는 늦은 시간 우리 집으로 쿠키를 들고 찾아왔다. 유산지에 조심히 싸서 들고온 녹차버터쿠키. 달콤한 쿠키를 먹으면서 담소를 나눴고, 결국 저번처럼 이야깃거리가 떨어지자 의자에 앉아있는 내게 키스를 했다. 뭔가 자세가 어정쩡해서 불편하지 않냐고 물어보자, 자기 매직 마이크 해보겠다고. (ㅋㅋㅋ) 한참을 웃었다. 조금 시간이 흐른후 내가 그 위에 앉아있었는데, 나를 번쩍 들어 침대에 눕혔다. (나도 모르게 한국말로 "엄마야" 해버렸다) 갑자기 우리 완전 최고의 바보라고 하며 웃는다. 오늘도 하게 될지 몰라서 콘돔을 안가져 왔다고. 그러다가 조금 있다가 너 진짜 없어? 묻길래, 사실 있는데... 음... 하고 머뭇거리니까, 안하고 싶으면 안해도 된다고 완전히 이해한다고 그냥 뽀뽀나 하자고 했다. 그래서 내가 넌 하고 싶어? 하고 물으니, 당연히 하고 싶은데 사실 섹스 안한지 일년 반이나 됐고, 보통 한 여자랑 만나기 시작하면 꽤 오래 기다렸다가 한다고, 게다가 일주일 내내 혼자 해결도 안해서... 좀 떨린다고. 처음 나랑 하는데, 즐거운 시간이어야 할텐데 뭔가 좀 준비가 안됐다고.
웃긴건, 나는 사실 저번 데이트 직전에 만약 하게 된다면 뭐라고 해야할까 하고 대사를 연습했었다. 대충 내용은: 너가 너무 멋지고 재밌고 좋아서, 정말 너랑 하고 싶은데, 이런 기분 느껴본게 오랜만이라, 좀 떨리고 혼란스러워, 같은 얘기였다. 그런데 Q가 먼저 선수를 쳐버려서 내 대사를 치기에 애매해졌고 (물론 미리 준비한 대사를 하는거 자체가 좀 켕기기도했다), 그래서 그냥 한참 뜸을 들이며 우물쭈물 했더니, Q는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마음껏 하라고, 아무리 말도 안되는 말 해도 상관없다고 한다.
"말도 안되는 말 아닌건 확실한데. 근데 모르겠어. 혼란스러워.
나도 하고싶은데 떨려... 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말은 뭔거 같아?"
"어...? 음... 반유대인적 발언이라던지."
"너 유태인이야?"
"아니"
"근데 왜... 뭐 하긴 너가 유태인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그런말은 좀 그렇긴 하지."
"그렇지. 아니면 뭐 쿠키가 사실 엄청 맛 없었다고 하거나"
"Q, 너 쿠키 사실 엄청 맛 없었어."
"... 나 쿠키 실력에 자신 없단 말이야."
"너무 반쿠키적 발언이었나. 당연히 농담이지 엄청 맛있던걸. 음... 넌 결혼했거나 애가 있는건 아니지?"
"아니. 맞아 만약 네가 결혼했고 애도 있다고 했으면..."
"Q, 나 사실 결혼했고 애도 있어."
"사실 네 남편이 네 룸메이트 아니야?"
"아니 남편이 아니라 부인이지. 내 룸메이트가 사실 내 부인이야. 내 부인은 남편도 있어."
"그거 불법 아니야?"
"응 불법이야."
"비밀로 해줄게"
뭐 이런 얘기들을 나누다가 결국 나는 콘돔을 꺼냈고, 그는 내게 들어와서 "좋은 생각이었어" 하고 웃었다. 중간에 그가 좀 힘이 풀렸는데, 반사적으로 내가 미안하다고 했다. 그런데 영어로 "I'm sorry"는 아시다시피 내가 미안하다는 뜻도 되지만 유감이라는 뜻도 되는데, 후자의 말로 받아들였다면 좀 상처받지 않았을까, 싶어서 더 미안해지고. 그리고 혹시 직전 B와의 사이즈 차이 때문에 그런게 아닌가,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도 굉장히 말도 안되는 생각인게, 누구의 잘못을 떠나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이걸 내 여성성의 문제가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내 예전 경험때문에 내가 망가져 버린게 아닌가 하고 괜히 자책하고 위축되는 것 자체가 슬프고, 나중에 가서는 조금 화가 났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회적인 학습을 겪었으면 관계 중에 잠깐 삐끗한게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나 말고도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그런 사회적인 학습을 내재화 한 걸까. 게다가 마찰이 없는 느낌이 단지 내가 Q와 함께 하는거에 대해 많이 달아올라서 그런 걸 수도 있는데. (실제로 후반부에 가서는 괜찮아졌다)
사이즈 차이야 앞으로 서로 맞춰 나가면 되는걸 지레짐작해서 겁먹고 "Q는 나랑 궁합이 안맞다고 생각하는게 아닐까"하고 혼자 자존감 깎아먹고 있는게 많이 답답했고, 그런 생각은 그만두기로 했다. Q도 어쩌면 자신의 남성성에 대해 자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냥 둘이 서로 좋아하는 마음에 즐겁고 가까운 행위를 한다는데에 의미가 있는건데, 그의 힘이 잠깐 풀렸다는게 뭐 대수라고. 실수로 발목을 삐끗하거나, 괄약근에 힘이 빠져서 방구끼거나 갑자기 급속트름하는거나 마찬가지 일텐데.
끝나고 담배를 피우면서 좋아하던 영어 선생님 얘기를 하다가 방에서 조금 더 얘기를 하다가, 몇시가 됐는지 내기 하자고 했는데 결국 내가 졌다. (그는 1시라고 했고, 나는 12시라고 했는데, 1시 28분이었다.) 그래서 그 대가로 다음에 어딘가 같이 가면 자기가 대사를 하나 줄 테니까 꼭 다른 사람한테 해야 한다고 "쪽팔려"게임과 비슷한 걸 하기로 하고, 같이 잠에 들었다. 아침 7시 출근준비 해야한다는 그를 차까지 배웅해주고, 길거리에서 키스를 했으며, 나는 다시 깊은 잠에 들었다가 깨어났다.
오후에 먹는 쿠키가 참 달다.
+ 고마운 마음에 웃는 얼굴이랑 너가 최고야! 라는 문구를 쿠키를 쌌던 유산지에 매직으로 써서 움짤로 만들어 보냈는데 답장이 없다 흐규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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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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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5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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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4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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