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향수 (로드끌로에, 얼그레이앤큐컴버, 솔레이블랑) & 향수 관련 잡담 뷰티

갖고 있는 여러 향수를 포스팅하기위해 사계절용으로 크게 분류해봤는데요, 뭐 딱히 엄격한 구분은 아닙니다. 그냥 때와 장소와 기분에 맞춰서 쓰는 거죠. 어떨 때는 여름에도 끈적하고 무거운 향을 쓰고 싶고, 겨울에도 코를 찌르듯 가벼운 향을 쓰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요. 그저 편의를 위해 여름으로 구분한 향수는 왼쪽부터 끌로에의 l'eau de chloe 로드끌로에 (시그니처인 초록색 리본이 빠졌는데 사라졌네요 ㅠㅠ), 조말론의 얼그레이앤큐컴버, 그리고 톰포드의 솔레이 블랑 바디오일입니다.

로 드 끌로에는 한낮에 나무 그늘 아래에 있는 철제 앤티크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서, 아이보리색 리넨 원피스를 입고 밀짚모자를 쓰고 맨발로 촉촉한 잔디의 촉감을 느끼며 아주 차가운 레모네이드 한잔을 마시는 기분을 들게 합니다. 톡 쏘는 감귤류의 향이 약간 떨떠름한 풀과 꽃향기와 어우러지죠. 오리지널 끌로에의 달달함은 드라이다운이 되어야만 비로소 모습을 약간 드러냅니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약간 새침한 부분이 있어요. 여성스럽기 보다는 소녀스러운 향입니다. 지속력도 좋고, 하루종일 언뜻 스치는 향기에 기분 좋아지는 향수. 슈가리치랑 로드끌로에만 기어코 재구매를 할 정도로 제가 좋아하는 향수기도 합니다. 

조말론의 얼그레이 앤 큐컴버도 따듯한 홍차 보다는 아이스 얼그레이를 마시는 느낌. 레몬 티케이크도 있네요. 어떨 때는 오이향 때문인가 약간 비릿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는데 잘 받는 날에는 오이비누같은 향이 나면서 굉장히 깨끗한 느낌이 듭니다. 베르가못은 금방 날아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무향이 나면서 따듯해지는데, 조말론 특유의 지속력 조루 부족때문에 처음 30분 동안에만 겪을 수 있는 소품 (클래식에서 말하는) 같은 경험입니다. 하지만 금방 톤다운 되고, 굉장히 가까이서만 맡을 수 있다는 특징 때문에 출근할때 뿌리기 좋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톰포드 솔레이 블랑 오일은 향수는 아니지만 퍼퓸오일이기 때문에 여름 향수에 추가했습니다. 한낮에 태닝오일을 바르고 실컷 바닷가에서 놀다가 해질녘즈음 팩에 든 코코넛 워터를 마시며 오렌지꽃이 핀 산책로를 거닐고 있는데, 바닷바람이 솔솔 불어오면서 시원하게 낮의 열기를 식혀주는 기분 좋은 장면이 연상됩니다. 바비브라운의 비치나 메종마르지엘라의 보드워크와 같은 계열의 향입니다만 그보다 바닷소금과 썬크림의 향이 조금 덜 나고, 조금 더 꽃과 과일향쪽으로 치우친 향입니다. 반짝이가 든 바디오일이라 자주 쓰진 못했지만 제가 가진 향수중에는 가장 "여름"같은 향이 아닐까 싶네요.

여담으로 만약 아무 것에도 구애 받지 않고 한가지 직업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조향사가 되고 싶습니다. 초등학교때 흠모했던 애가 쓰던 샴푸의 향기에 끌렸던 기억이 있고, 좀 스토커스럽지만 전 결국 그 애 집에 놀러갔을 때 화장실에서 그게 무슨 샴푸인지 확인하고 나서야 직성이 풀렸습니다.ㅋㅋ 요즘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부들부들한 천 시트의 자동차에 타면 나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푸근하고 텁텁한 먼지냄새도 기억속에 각인되어 있고, 무엇보다 어릴때 밤늦게 아버지가 집에 오셔서 차가운 바람이 밴 양복을 입고 저를 안아 주실때 나던 에르메스의 오도랑쥬베르트의 향기는 제 정체성과 제 개인적인 역사를 이루는 큰 기억의 조각입니다.  

향수란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그리고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특별합니다.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나게 해 줄때가 있으니까요. 어떤 시각적, 이성적인 디테일이 아니라 그 때의 원초적인 감정적인 부분들을 떠오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엄마가 샘플로 주거나 어린이용 향수 이런게 아닌 온전히 제 것으로 처음 산 향수는 입생로랑의 베이비돌이었습니다. 상큼한 자몽향이었던가요. 팽이처럼 생긴 분홍색 유리병에 담겨 금색 디스코볼같은 마개아래에서 반짝이가 마법의 약처럼 떠다니는 향수의 장면이 짙게 남아있습니다. 그 다음에 샀던 것은 프레쉬의 슈거 리치. 그후로 프레쉬의 브라운 슈거, 레슬리 블로젯의 리얼 스킨, 페라가모의 인칸토 블룸, 토카의 스텔라, 빅터 앤 롤프의 플라워밤, 딥티크의 필로시코스 등 이 글을 쓰면서 되짚어보니 꽤 여러 향수들을 거쳐왔네요. 

향수를 자신의 어떤 시그니쳐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결국엔 포도젤리라는 인간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향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세상에는 너무 좋은 향들이 많아서 아직까지는 많은 향수와 연애를 해보고 나중에 안착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평생 한가지 향만 입어야 한다는건 아직은 생각하기 힘들군요. 향수와 자유연애만 하다가 죽어도 괜찮을 듯 합니다.

패뷰밸 여러분들은 여름에는 어떤 향수를 쓰시나요?




덧글

  • 브롯 2016/09/07 16:49 #

    저 오늘 포도젤리님 스토커 ㅋㅋㅋㅋ 포스팅 다들 넘 잘 보고 있어여 조말론~ 얼그레이 진짜 시원하고 깔끔한 향! 저는 오이도 좋아하고 홍차도 좋아해서 ㅋㅋㅋ 톰포드는 펄감 쉬머함이 강한가요? 예전에 몽쥬약국 갔을 때 눅스 드라이 오일에 펄 들어간 태닝 오일을 봤는데 펄감이 은은하고 좋아서 사고싶었지만 펄 때문에 얼굴에는 바를 수가 없어서 그냥 일반 샀는데... 눅스 향도 좋아하고 해서 펄 들어간거 살 걸 그랬네 하다가 톰포드 펄오일 보니까 또 뽐뿌 오네여... 크 세상엔 정말 예쁘고 좋은 것이 넘나 많아요!!!!! ☆
  • 포도젤리 2016/09/07 17:45 #

    글마다 답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당 ㅋㅋㅋㅋ 폭풍수다 ㅋㅋㅋㅋㅋ

    눅스하나 이미 있으시면 톰폳 사시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게 눅스 향 좋아하시면 톰폳도 괜찮으실거 같거든요.... 같은 라인 (솔레이블랑) 으로 향수도 나온 것으로 아는데 향은 좀 달라요 다시 시향해봐야겠지만 제 기억으로는 오일이 향수 본품보다 좀더 상큼한 것 같았어요.

    그치만 만약 향기보다는 눅스처럼 쉬머리한게 더 좋아서 사시려는 거라면 톰포드는 비추입니다ㅠㅠ 톰포드는 눅스같은 쉬머가 아니라 그냥 반짝반짝 콕콕 드문드문 빛나는 스타일이라서... (그래서 사실좀 불만... 저는 막 광이 흐르는 번떡번떡한 몸을 원했는데 그냥 뜬금없이 빤짝! 빤짝! 이런 반짝이풀 느낌이라... 그게 또 좋으시다면 모르겠지만) 그리고 글리터의 색이 흰색? 아님 은색? 이라 눅스보다 까만피부에선 좀더 티가 나긴 하네요 ㅋㅋ
  • just me 2016/09/08 08:59 #

    저는 좋아하는 향이 정해져있어요. 플로랄머스크향...☆
    그러다보니 시향하다 충동구매하면 꼭 이미 가지고 있는 향이라는ㅋㅋㅋㅋㅋㅋㅋ
    톰포드 솔레이 향묘사가 예술적이네요
  • 포도젤리 2016/09/08 11:52 #

    그죠 끌리는게 어느정도 정해져 있나봐요... ㅋㅋㅋ 저도 사고나면 같은향ㅋㅋㅋㅋㅋㅋ 심지어 첫노트가 달라도 드라이다운 후에는 비슷비슷하더라고요 저도 머스크 디게 좋아합니다 ㅠㅠ

    그 혹시 향수 블로그 중에서 366일 향기나는 블로그라고 아세요? 그분이 뭔가 독특한 대화형?으로 시향기를 쓰시는데 특유의 코드가 있어서 재밌더라고요. 저도 저만의 스타일로 향수를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아직 갈길이 멉니다만) 칭찬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네요 분발하겠습니다 ㅋㅋ
  • 포도젤리 2016/09/08 11:55 #

    아, 그리고 오늘 제가 올린 motd에 정식으로 트랙백은 못걸었는데 저스트미님 글 언급하면서 링크 걸어놨는데 괜찮겠지요...? 뒤늦게나마 양해 부탁드려요 ㅋㅋ
  • just me 2016/09/08 12:32 #

    그럼요 패뷰밸은 소통의 장이 아니었나요ㅋㅋㅋ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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